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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운영체제 과목을 강의한 지 이제 곧 이십성상이다. 거의 매해 한 번도 거름없이 계속 강의를 했건만, 매주 어김없이 찾아오는 강의시간은 왜 그리 벅찬지 모르겠다. 강의 시작 전의 조바심, 허덕임, 그리고 강의 마친 후의 아쉬움과 자책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기 어렵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Operating Systems: Three Easy Pieces".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빠져들었다. 운영체제를 정식으로 전공한 사람이 실제 구현의 밑바닥까지 파헤쳐 놓은 책이다. Atlas의 reference bit, Hoare의 컨디션 변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아이디어의 학문적 태동에서 현대 시스템에서 구현된 사례에 이르기까지의 거대한 스펙트럼을 군더더기없이 설명하고 있다. 운영체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만나는 지점이다. 찬공기와 더운공기가 만나는 곳,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곳에서는 예외없이 엄청난 엔트로피를 가진 무질서와 혼돈이 존재한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 존재하는 규칙을 찾아내서, 그 규칙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정제하여 전달하는 것이 운영체제 교과서의 역할이다. 이 책은 그 역할을 부족함없이 잘 해내었다.

책을 번역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원전의 영어 문장이 자상하고 세심하다. 학생들로부터 그것을 읽는 즐거움을 뺏고 싶지 않았다. 두 번 정도 강의를 했을까? 우리말로 읽으면 내용을 훨씬 더 빨리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의 소리가 강의실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나름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영어는 영어수업시간에 따로 하자. 운영체제 강의의 지상 목표는 학생들이 재미있게 운영체제 수업을 듣고, 그 내용을 곱씹고, 느끼고, 즐겁게 사유토록 하는 것이다. 우리말 책으로 학습하면 최소 절반으로 시간이 줄어든다. 남는 시간에 더 깊은 내용을 학습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운영체제 분야에 관심있는 학생들에게 그리고 운영체제 분야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는 데 있어서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라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해서 박민규 교수님, 이성진 교수님과 의기투합하여 덜컥 시작한 번역 작업이다. 초벌 번역에 꼬박 일년이 걸렸다. 그리고 고쳐쓰기를 세 학기동안 반복했다. 아직도 부족하고 모자라기 그지없다. 부끄럽기 짝이없는 졸고이지만, 부족한 부분은 '그것이 인생' 이려니 하고 이제 그만 세상에 내려 보내기로 한다.

이 책의 강의자료를 직접 제작해서 원저자에게 송부했다. 좋은 책을 저술한 작가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감사의 표시다. 책의 웹사이트 (http://www.ostep.org) 에 강의자료가 링크되어 있다. 필요하신 분들은 별도로 연락을 주시면 언제든지 배포토록 하겠다. 강의자료는 효율적인 강의를 위한 매우 중요한 도구이지만, 학생들이 강의자료만을 갖고 수업에 임하는 식의 학습보다 직접 책을 읽는 식의 학습을 진행할 것을 권장한다. 학습의 핵심은 책을 읽고 내용을 스스로 소화하는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다.

함께 번역작업을 성공적으로 해주신 박민규 교수님, 이성진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제작 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홍릉과학출판사 우명찬 사장님, 김기용 이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저술 과정에서 오랜시간 원고를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눈 한양대학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연구실 제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항상 힘이 되어주는 아내, 멋진 승재, 예쁜 조현은 아빠의 영원한 발전소라는 말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있게 하신 어머니께 그리고 타계하신 아버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

2016년 12월 행당동 覓牛齋에서

대표역자 원유집